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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소식

IT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

인포맥스시스템 2015. 11. 10. 11:58

 

 

독특하고 재미있으면서 의외스러운 IT와 관련된 14가지 일화를 소개합니다.

 

 

 

'기괴하지만 사실인' 14가지 IT 이야기

 

Josh Fruhlinger | ITWorld

 

컴퓨터가 점점 강력해짐에 따라 이제 인간이 우월한 영역을 일부러 찾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인간이 잘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에는 '이야기'가 있지 아닐까? 무수한 데이터가 있지만, 다른 인간에게 어떤 것이 흥미로운지 이해하고 찾아내는 일은 인간이 더 잘할 것이다. 다음의 이야기들은 독자의 관심을 자극하기 위해 우리 인간이 직접 선택한 것들이다. 적어도 당분간은 로봇보다 재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ciokr@idg.co.kr

 

 

 

 

 

무선랜 발명에 일조한 미녀 배우
헤이디 라머(Hedy Lammar)는 클래식 헐리우드의 대표적 미인 중 한 명이다. 수학적인 재능이 뛰어났던 그녀는 첫 번째 남편으로부터 무기 시스템과 무기 제조에 대해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녀와 그녀의 친구이자 아방가르드 작곡가 조지 안테일(George antheil)은, 제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어뢰의 라디오 신호를 주파수 별로 건너뛰게 만들어 주파수가 꼬이는 것을 방지하는 기술을 발명했다. 주파수 호핑이라는 개념이다. 미 해군은 당시에는 이 기술의 활용을 거부했지만 20년 후 이 특허는 와이파이를 비롯한 수많은 방송 표준 개발에 활용됐다.

 

 

 

 

 

 

 

 

 

파이어폭스를 사용해 무죄 방면된 살인자
2011년 케이시 앤써니(Casey Anthony) 재판은 큰 관심을 집중시킨 사건이었다. 경찰은 모든 살인 사건에서 그러듯 앤써니가 부모와 함께 사용하던 컴퓨터에서 검색 히스토리를 포함한 증거를 찾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앤써니가 무죄 판결을 받고 난 이후 숨은 사연이 드러났다. 독살과 질식 같은 범죄를 암시하는 검색어가 컴퓨터에 있었지만 검찰측이 찾아내지 못했다고 그녀의 변호사가 밝혔던 것이다. 검찰 측은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검색 히스토리만 상세히 살폈고 앤써니가 주로 쓰던 파이어폭스 브라우저의 검색 히스토리는 살피지 않았던 것이다.

 

 

 

 

 

 

 

 

 

 

 걸프전에서 큰 인명피해를 초래한 프로그래밍 에러
1991년 걸프전 기간 동안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이 사우디아라비아 다란(Dharan) 근처의 미 육군 부대를 타격해 28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다. 근처의 패트리어트 미사일 발사대는 그 스커드 미사일을 격추시키는데 실패했는데, 그 패트리어트에 소프트웨어 버그가 있어서 그랬다는 점이 후에 밝혀졌다.

문제는 내부 계산에서 10진법과 2진법이 혼재했던 것이었다. 시스템을 리부팅 하지 않을수록 문제는 점점 심각해졌는데, 전쟁 기간 동안 패트리어트는 항상 비상 대기 상태였고 재부팅 된 적이 없었다. 다란에 떨어진 그 미사일은 이라크가 발사한 마지막 미사일이기도 했다.

 

 

 

 

 

 

 

 

 

 

 

 

 

 

 

20년동안 미국 핵미사일 발사 암호는 00000000였다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은 군 지휘관들이 그들의 판단 하에 핵 공격을 가할 수 있는 권한이 너무 크다는 점을 우려해 핵미사일 발사에 필요한 여덟 자리 암호를 새 정책으로 도입했다.

그러나 상관의 인성보다도 핵 대응이 늦어지는 것을 더욱 걱정했던 미 공군 장교들은 모든 미사일 발사대에 00000000이라는 암호를 사용했고 당신 사무실에서 사람들이 그러하듯 까먹지 않기 위해 종이에 그 8자리 암호를 써 붙여놓았다. 공군은 이런 사실을 부인하지만 1970년대 미 공군 미사일 발사 담당 장교였던 브루스 블레어(Bruce Blair)가 직접 한 이야기다.

 

 

 

 

 

 

 

 

 

 

 

팔 스필링이 노르웨이 전체 인터넷의 플러그를 뽑다
팔 스필링(Pal Spilling)은 노르웨이의 컴퓨터 개척자로, 컴퓨터 네트워킹에 대한 그의 관심으로 인해 1973년 ARPANET은 처음으로 미국 외 지역으로 확산됐다. 15년 후 초창기 인터넷에는 자가 복제하는 코드 모리스 감염이 퍼져나갔다. 모리스는 같은 컴퓨터에 자기 스스로의 여러 복제판을 설치하고 감염된 시스템을 멈추게 만드는 웜이다.

모리스 웜이 미국에 퍼지기 시작함에 따라 스필링의 미국 동료는 그에게 전화로 경고했다. 스필링은 노르웨이의 전체 컴퓨터 네트워크 감염을 막기 위해 신속하게 노르웨이 인터넷을 전세계 인터넷으로부터 차단시켰는데, 당시에는 이게 케이블 하나 뽑는 것 만으로 가능했다.

 

 

 

 

 

 

 

 

 

아마존의 이름은 알파벳 순서를 염두에 두고 결정됐다
아마존은 보기 드문 회사다. 현대의 웹 거대기업이면서 초기 인터넷 시절부터 역사가 이어져 내려왔기 대문이다. 아마존의 이름을 보자. 제프 베조스는 원래 아마존을 아브라카다브라의 약자인 카다브라(Cadabra)로 불렀다. 인터넷에서의 책 구입 경험이 얼마나 마법과 같은지 이름으로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회사 창립 작업을 하던 변호사들은 그 이름을 “카다버(cadaver)”로 자꾸 잘못 듣는 문제가 생겼고 베조스는 이름을 바꿔야 함을 깨달았다. 1995년 대부분의 사람들은 웹에서 야후 디렉토리를 가장 많이 살펴보았는데 당시 야후 디렉토리는 알파벳 순서대로 결과를 보여주었다(요즘에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정렬법이다). 아마존의 “A”가 여기에서 유리하게 작용했다.

 

 

 

 

 

 

 

 

 

컴퓨터 마우스는 최소한 3번 발명됐다
1968년 더글라스 엥겔바트(Douglas Engelbart)는 혁명적인 “온-라인 시스템(oN-Line System)”, 즉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UI의 모태가 된 GUI를 가진 컴퓨터를 시연했다. 엥겔바트의 시연에는 그가 주 입력 도구로 개발한 마우스가 포함되었다. 하지만 마우스-같은 인풋 장치는 그 이전에 최소한 두 번 더 개발되었다.

1952년 캐나다의 페란티-패커드(Ferranti-Packard)에서 일하던 톰 크랜스톤(Tom Cranston)과 프레드 롱스태프(Fred Longstaff)에 의해서 한번, 1960년대 영국 해군에서 일하던 랄프 멘자민(Ralph Ben jamin)에 의해서 한 번씩 개발되었다.

엥겔바트의 마우스는 큰 바퀴와 달리 형태로 현대식 고무 트랙볼을 사용했는데, 둘 모두 비밀로 분류된 군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다.

 

 

 

 

 

 

 

 

 

 

 

 

데이터는 우주로부터 날아온 고에너지 입자에 의해 오염될 수 있다
반도체 전자기기는 “소프트 에러(soft error)”에 취약하다. 특정 데이터 비트나 신호 오류가 시스템 자체의 내재적 결함으로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그러나 과학자은 마침내 이런 에러들의 일부가 외부 우주에서 지구로 날아드는 고-에너지 입자인 우주선(cosmic ray) 때문인 것으로 결론내렸다. 이 입자들이 컴퓨터 칩의 비트를 바꿔서 오류가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장비들을 지하동굴에 보관하거나 리부팅 하는 것 등이 있다.

 

 

 

 

 

 

 

 

 

 

 

 

 

닌텐도는 회사 역사의 절반 이상 동안 화투만 만들었다
모든 메이저 콘솔 제조사들 중에서 닌텐도는 가장 긴 기업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닌텐도는 일본 현대화의 초창기인 1889년 창립되었다. 하지만 이후 67년 동안 닌텐도는 단 한가지 제품 하나푸다(Hanafuda) 카드만을 만드는 회사였다.

1956년 닌텐도 창업자의 손자인 히로시 야마우치(Hiroshi Yamaushi)는 미국을 방문했고, 세계에서 가장 큰 카드 제조사가 얼마나 작은지 확인했다. 이후 그는 제품 다변화를 결정했다. 몇 번의 실패 이후 닌텐도는 전자사업에 뛰어들었다. 카드 게임에서 비디오 게임으로의 진로 전환은 직관적인 결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상 전화는 닉슨 정부부터 미국 내에서 상업적으로 활용되었다
과거에 이뤄진 미래 관련 전망에는 대개 화상 통신이 포함돼 있었다. 그 미래는1970년 AT&T가 첫 상업적 픽쳐폰(Picturephone) 제품을 선보이면서 이뤄졌다. 마 벨(Ma Bell)은 5년 안에 미국 내 수십 대의 비디오 폰이 설치될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예상했지만, 1975년까지 그 수는 몇 백대에 불과했다.

물론 비용이 가장 큰 문제였다. 서비스 비용은 월 160달러였는데, 이는 2015년 물가로 947달러에 달하는 금액이다. 또 그 돈으로 겨우 30분의 비디오 채팅밖에 할 수 없었다.

 

 

 

 

 

 

 

 

 

 

 

 

 

 

나이지리아, 가나, 방글라데시는 지상 통신선 시대를 건너뛰었다
북미와 유럽지역의 많은 나라들은 20세기 시민 거의 대부분을 새로운 전화 네트워크의 경이로운 텔레커뮤니케이션으로 연결시키는데 막대한 자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부유한 나라들의 식민지 생활을 거쳤던 가난한 지역 나라들은 그럴 자원이 없었다. 오늘날에도 나이지리아, 가나, 방글라데시의 주택 중 1% 미만에만 지상 통신선 전화가 설치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나라 시민들이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다. 이들 국가의 휴대폰 보급률은 85%가 넘는다.

 

 

 

 

 

 

 

 

 

 

 

 

 

최초의 웹 페이지는 여전히 원래 URL로 연결될 수 있다
1991년 8월 6일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는 유스넷 그룹 alt.하이퍼텍스트에 그가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이라 부르던 프로젝트에 대한 포스팅을 올렸다. 그는 이를 “W3”라고 줄여 불렀는데 놀랍게도 아무도 그렇게 따라 부르지는 않았다.

그 첫 웹 페이지는 여전히 CERN 고-에너지 물리학 연구소 사이트상에 원래 주소로 올라와 있고, 배경, 그래픽 없이 초창기 웹에 대한 다른 정보 링크 몇 가지와 함께 처음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필자는 그 사이트의 FAQ 페이지를 좋아하는데 거기에는 당신의 웹 서버를 만드는 방법과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은 상태에서 웹 문서를 받는 방법(이메일!) 같은 링크들이 포함되어 있다.

 

 

 

 

 

 

 

 

 

 

스페이스잼과 유브갓메일의 마케팅 웹 페이지도 아직 살아있다.
마이클 조던과 벅스 버니가 출연한 1996년 영화 스페이스잼(space Jam)과 1998년 영화 유브갓메일은 인터넷 마케팅 시대 초창기에 개봉한 영화들인데, 이 두 영화의 웹사이트가 여전히 거의 변함없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은 미래 역사학자들에게 훌륭한 자료가 될 것이다.

두 사이트 모두 그 당시의 미적 감각이 엿보인다. 대상 관객들에 어울리게 스페이스잼은 번쩍번쩍하고 유브갓메일은 차분한데 이를 통해 이 모든 “인터넷”이란 것을 막 이해하기 시작했던 사람들의 생각을 가늠해볼 수 있다. 사상 첫 웹 페이지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하지는 않겠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더 큰 감회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출처 : ci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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